♣ 고목나무-구상과 추상의 경계
2010.1.30.
아래 해석은 몇 년 전 M 수석에서 선물로 받았던 석도산 해석이다. 모암은 좋으나 석을 좀 더 깨끗하고 매끄럽게 하려고 물 양석을 하였는데 얼마 전 물을 교체하면서 보니 기대한 만큼 양석 되지는 않았지만, 더 계속 양석 해봐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냥 꺼냈다.
석도에 가보신 분은 잘 알겠지만 의외로 모암 좋은 돌을 하기도 어렵고 또 앞으로 다시 가보기도 어려울 것 같아 한참 살펴보고 나서 좌대를 맡겼다. 그림은 좀 추상성을 띄지만 검은 부분이 필자에게는 나무로 보인다. 그래서 고목나무라 석명을 지었다.
나무라! 이 문양석도 나무로 보니 어느 석우분께서 필자가 나무 문양석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경향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혹시 나무 문양에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닐까? 문득 조바심이 난다.
한때 수림석을 쫓아다니다 보니 검은 부분만 있으면 수림으로 본다든지, 푸른 숲의 빛이 좋아 우거진 문양을 보면 숲으로 보고 있기는 하다. 필자는 자연과 환경 그리고 나무는 무척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공기 중의 이산화 탄소를 없애고 대신에 맑은 산소를 공급해주며 그늘과 새와 곤충들이 모일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숲 그림을 보면 시원한 느낌도 받는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냥 무의식적인지는 몰라도 필자가 느끼기에도 나무 문양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만 생각하니 객관성이 우려된다. 다른 석우도 고목나무로 봐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초보시절일 때 필자에게 물어본다면 아마도 어디가 나무가 있는데요? 라고 나무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아 거꾸로 물어보았을 것 같다.
나무 기둥이 외곽선의 윤곽도 분명치 않고 녹색 점에 의해서 많이 잠식당하여 그냥 숲의 어두운 부분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축경미를 감상하는 수석 중 문양석에서 그림을 보게 되는데 그림은 보통 구상과 추상으로 나뉜다.
구상은 사진처럼 사실적인 그림이고 추상은 비구상의 그림이다. 그림은 구상에서 점점 생략되어 나중 점과 선 그리고 면만 남는 비구상의 추상으로 간다. 구상과 추상의 감상하는 방법으로 구상은 자연을 사실적으로 축소해 놓은 문양이라 산수 자연을 보듯이 감상하면 된다.
추상 그림은 어려워 화가들에게 어떻게 감상하면 되느냐고 물어보면 추상화는 그냥 각자 느낀 대로 감상하면 된다고 한다. 수석에서 비구상 추상 또한 각자 느끼는 대로 감상하면 될 것이다. 단 수석의 기본이 아름다움이므로 비구상 문양과 색감 그리고 모암 모두 아름다워야 좋을 것이다.
아래 석도 그림은 구상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다. 그럼 중간인 반추상일까? 반추상의 감상은? 반추상은 비구상보다는 좀 더 확실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사람을 그린 인물화에서 교통표지판의 사람 그림처럼 색도 2도 정도이고 사람을 윤곽만 표현한 그림을 디자인이라 하는 데 추상이라 하기도 하고 반추상이라 할 수 있다.
수석인들은 자연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문양 속에서 이미지를 찾는 노력을 하다 보니 평소 그림 보는 훈련을 열심히 하는 셈이다. 더구나 화가들이 그리는 추상화에 주제가 있다면 그림에 어떤 경향성을 갖게 되는데 수석 문양은 그런 경향성도 없고 완전 자유다. 제멋대로다. 그래서 더 어렵다.
색도 디자인처럼 2~5도 정도로 자연처럼 다양하지 않다. 그래서 교통표지판 그림 디자인 정도의 문양이면 사실 수석에서는 거의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므로 보통 사실적인 그림(구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위의 그림은 흑색과 녹색의 2도이며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도화지에 그림 초안을 그려놓고 색종이 뒤에 풀칠하여 뾰족한 것으로 잘라서 붙이는 모자이크 그림을 실습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이 아니고 점이라도 어느 정도 윤곽이 나타난다면 구상 그림이다.
수석을 오래 하였어도 수석인에 따라 그림을 보는 시각에 개인차가 있다. 그렇다면 수석의 초보자이거나 그림을 잘 보지 못하는 수석인의 경우에는 추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그림을 잘 보는 수석인의 눈에는 이미지가 확실히 떠오르니 구상이 된다.
그림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애매할 때가 있는데 수석에서도 같을 것이다. 이처럼 수석에서 그림과 형을 나름대로 분류하지만, 경계가 애매한 수석이 있다. 해석에서 사유석과 단지석, 강산석에서 평원석과 토파석 등이다.
경계가 애매한 수석을 굳이 구분하려고 고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수석은 자연의 축경미를 감상하는 것이고 자연의 모습은 무한하여 그냥 자연에서 본 듯하고 좋으면 탐석하여 감상하면 된다.
그러나 수석이론에서 형을 삼 요소로 하여 중시하는 것은 처음 수석을 배우는 초보자에게 막연히 자연을 닮은 형태의 수석을 탐석하라고 하면 잘못한다. 도심에서 보통 거친 돌만 보다 매끈한 돌을 보면 이것이 수석이 되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많이 존재하는 자연의 형태를 이해하기 쉽게 분류하였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형상과 문양의 구분이 애매하다고 수석이 아닌 것이 아니다. 자연의 형상은 무한하게 변하므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연을 느끼면 그것이 수석이다. 단 반추상 문양에서는 이미지가 있으므로 추상과는 달리 구상처럼 무엇을 닮았는지 객관성 확보가 필요하다.
구상 그림은 객관성 확보를 위해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하지만 반추상 그림은 조금 어렵다. 그래서 반추상은 동료 석우에게 의견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도 가급적 보편적으로 보려 하지만 좋아하는 그림에 따라 너무 추상적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산지에서 탐석할 때 애매한 문양석은 주변의 석우에게 물어본다.
아래 석도산 해석은 선물 받은 것이라 주변 석우들에게 물어볼 상황이 아니라서 양석 후 혼자 나름대로 판단하여 좌대를 하였지만 촬영하면서 다른 석우들은 어떻게 느낄까? 추상이라 할까? 구상이라 할까? 라는 생각으로 한참 수석과 대화를 나눴다.

석명: 고목나무, 크기: 10x14x7, 산지: 석도
어두운 밤 고목나무(가운데 검은 부분) 한 그루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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