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사회 일반

행복과 불행, 그 증오의 조절

정의&자유 2010. 10. 10. 17:35

 


행복과 불행, 그 증오의 조절

2010.10.10.  

 

 

  우리는 각자 올바르게 행동하고 처신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범적이고 정확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그 사람은 정확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이런 말을 듣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많은 경험과 수양을 쌓고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꾸짖으려면 정확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하건 잘하건 항상 잘못했다고 꾸짖으면 그 사람의 평가를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언제나 잘못했다고 한다면 언제나 멈추어 있는 고장 난 시계와 같다. 고장 난 시계는 차라리 치워버리는 것이 주변이 깔끔하다.

모 포털사이트의 불만세력과 반정부세력을 보면 정부가 무엇을 해도 반대고 좋은 일을 해도 불만이고 어떻게 해도 불평이다. 어떤 정책에 대해 국민의 반응과 의견을 참고할 만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쓰레기일 뿐이다. 꼭 하나 유용한 것이 있다면 반대의 의견에 대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나 조사한다면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자료가 모 포탈에 버젓이 달렸다. 만약 당신이 지옥의 소리를 듣고 싶다면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어라! 불만, 증오, 비난, 욕설이 거기에 있다. 지옥의 소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현실 세계 불행의 소리다. 와글와글. 초등학교 쉬는 시간 아이들의 와글와글은 쾌활한 웃음소리, 장난소리, 천진한 소리로 귀엽기나 하지만 모 포털 인터넷 댓글의 소리는 지옥의 소리, 불행의 소리다.

그들을 아무도 제지할 수 없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고 피해를 봐야 악플을 규제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생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시간에 무언가 자신이 꿈꾸는 일에 노력한다. 노력하는데 시간이 아까워 불평할 시간이 어디 있나? 또 노력하는 동안은 희망이라도 있어 작은 행복이 있다.

비록 시간이 남아도 증오와 악마의 마음이 싫어 건전하게 음악이나 여행 등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댓글 달고 곧 잊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댓글을 쓰는 동안 그들은 불행 속에 있는 셈이다. 아무도 불행하라고 하지 않지만 스스로 불행 속에 빠진 그들이 안타깝다.

직장에 다니거나 건전한 사회생활을 한다면 정말 댓글 달 시간이 없다. 놀더라도 자신의 취미생활, 인터넷 사이트나 블로그를 가꾸기 바쁘다. 자신의 인격과 같은 자신의 의견이 어디에 처박혀 있고 어떤 반대 의견이 달리고 어떻게 이용될지도 모를 포탈에 댓글 달 시간이 아깝기도 하지만 사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없다.



잃은 호루라기 값만큼만 증오하라.

어떤 할머니가 귀여운 손자에게 예쁘고 빨간 호루라기를 500원 주고 사주었더니 손자가 불고 다니며 좋아하여 마음속으로 무척 기뻐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어떤 아이가 빼앗아 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분노하였다.

아이를 달래며 울음을 그치게 하였지만 귀여운 손자의 호루라기를 빼앗아 간 아이에 대한 분노로 얼굴이 붉어지고 식사 때에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지경이다. 이것이 정도가 심하여 하루 이틀 지나 며칠째 계속되니 할머니는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이것은 어떤 일화를 이곳에 인용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어떤 일로 손해를 보았다면 분노를 발산하여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겠지만, 그 분노는 손해 본 값만큼만 하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500원어치만 화를 내면 충분하다. 그 이상 화를 낸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마이너스다. 당연히 인터넷에서 유명인에게 향해지는 분노의 화살은 자신이 그에게서 아무런 손해를 본 것이 없다면 그를 향한 분노와 증오는 자신에게 백해무익한 일이므로 지양해야 한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불알친구가 있다. 어릴 때부터 허물없이 함께 자란 친구를 일컫는다. 보통 성인이 되어서도 절친하게 지낸다. A 친구는 착하지만, 일찍 명퇴당하여 백수다. 다른 B,C,D 세 친구는 적극적인 성격에 사회생활도 계속한다. 그런데도 BCD는 A가 착하다며 계속 어울려왔다.

세 친구 중에 B 친구가 주기적으로 연락하여 만나곤 하였다. BCD 친구는 중년임에도 만나면 술과 여자 이야기다. 술도 친구와 만나면 늦도록 마셔야 한다. 그런 친구들이 A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A는 시간이 늦어지면 공공 교통수단이 끊어지는 시간 전에 귀가하려고 가끔 실랑이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심하게 욕할 때에는 좀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도 그냥 듣기만 하면 되니 어울리는데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언젠가부터 A는 한번 심하게 싸우고 나서 B가 연락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세 친구가 다툰 후라 잘못을 사과하며 먼저 전화하게 A를 시험하려는 듯하였다.

A는 갑자기 외톨이가 된 듯 우울해졌다. 그러나 전화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전화를 준다면 직접 만나서 서로 잘잘못을 논할 수는 있어도 일방적으로 시험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아무도 사람이 사람을 시험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

성경에 예수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온 이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더니 모두 가버렸다고 한다. 신이 아닌 인간은 불완전하여 살아가며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아무리 자신이 정의롭고 진실만 말한다 하여도 아무도 개인을 심판할 수 없다. 수년간의 체계적인 교육과 자격을 취득한 판사들만이 가능하다. 그렇게 훈련받은 판사들도 간혹 오판하였다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한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오죽할까? 그래도 네티즌들은 댓글로 자신이 정의의 사도인 양 여론 재판을 한다.

법을 어기면 법으로서만 심판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왕정시대에는 분노한 왕의 한마디에 처형당했다. 독재정권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한 재판을 하려고 노력하는 민주주의 사회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완전하고 죄 있는 개인이 누구를 심판하려 하는가? 비슷한 처지의 개인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심판할 수 없다.



타블로 학력위조 끊임없는 의혹 제기

올해 5월에 개설된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일명 타진요의 끊임없던 학력위조 제기는 타블로에게 가수활동까지 중단하게 녹다운시키더니 MBC에서 타블로편 스페셜을 2회에 걸쳐 방송하며 서서히 그 실체와 진실이 규명되어 가고 있다.

또 경찰은 지난 8일 타블로 관련 명예훼손 고소 및 학력위조 고발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타블로의 스탠퍼드대학 학·석사 졸업을 공식 확인했으며 타진요 운영자 왓비컴즈를 명예훼손혐의로 체포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타진요의 운영자 왓비컴즈는 유명한 악플러라 한다. 악질적인 악플러에 시달려 본 네티즌이라면 현재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지겠지만, 그 후유증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여 대표적인 악플의 아픈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뒤돌아 보면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보통은 의혹 제기를 많이 해왔던 MBC가 이번에는 의혹규명에 나섰다는 것이다. 아직도 타진요는 방송과 경찰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의혹 제기는 자판 몇 자로 쉽게 할 수 있으나 가공할 폭발력으로 개인을 파멸시키고 자살에 이르게까지 하여 치명적이다.

그러나 의혹 규명은 일일이 조사한 결과를 사실 인증하여 보여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아 진실 규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사기꾼들은 다른 사람을 속여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다고 한다. 그런 사기꾼이 아니라면 보통은 한두 껍질만 벗기면 진실이 규명된다. 타블로와 타블로 학우들은 몇 차례에 걸쳐 의혹을 규명하려고 하였지만 타진요는 끝까지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개인적인 악의가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다. 만약 정확하게 캐나다 인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그 사실 자체를 갖고 말했어야 한다. 그가 싫다고 거짓으로 비판하고 공격한 것은 더 잘못된 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외국 국적의 교포가 국내에서 살며 계속 활동한다면 별도로 그들이 국내 소득의 일정 세액을 방위세로 내게 하는 방안을 찾는다면 군대를 다녀오고 세금을 열심히 내는 국내 네티즌들의 불만을 조금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대안을 생각해 본다.


진실을 규명하려면 먼저 스스로 진실해야 한다.

부득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다면 진실에 의해야 한다. 진실은 한쪽의 의견만 들어서는 안 된다. 찬반 양쪽의 의견을 듣고 스스로 사심 없이 판단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한 인생 경험과 자료 부족으로 실수할 수가 있어 항상 조심하고 잘못했다고 판단이 되면 바로 사과하고 거둬들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반듯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첫째 감정적이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 혈연, 지연, 정치적 이념에 무작정 휩쓸리기 쉽다. 거기에 감정까지 실려 원수지간이 아니어도 쉽게 상대를 증오한다. 이런 연결 고리를 모두 끊어야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평가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의 젊고 예쁜 여자의 죄는 모두 용서가 된다던 지, 처녀들은 미혼의 멋진 남자들의 잘못도 역시 쉽게 용서가 된다던 지, 자신이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싫다던 지 이러면 안 된다.

막장 드라마의 고약한 시어머니와 똑같다. 며느리가 하는 일은 모두 밉고 싫다. 며느리가 시집와서 잘못한 일은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일만 있으면 전부 끄집어내어 야단친다. 잘못된 것이 너무 많아 증오로 며느리를 다스린다. 반면 자신의 딸은 잘못한 일이 없다. 설사 잘못해도 모두 사랑스럽고 곧 잊힌다. 아무리 며느리가 잘못한 일을 샅샅이 나열해도 아무도 시어머니가 옳다고 하지 않는다.

막장 드라마의 못된 시어머니는 편애의 극단을 보여준다. 혹시 자신은 그렇지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특히나 정치적인 기사를 보면 여야를 떠나 모두 일방적이다. 이념적인 것도 매한가지다. 서로 상대의 잘못된 것만 보고 잘한 것은 보지 않는다. 상대는 모두 잘못했고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우리의 정치는 발전하지 못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라도 잘못한 것은 꾸짖고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라도 잘한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객관화하고 진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 그 상태에서 우리 네티즌들이 사실과 진실을 말해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