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자유
2011. 10. 28. 20:36
♣ 용문사의 가을
2011년10월 28일

'01년 10월 25일 강릉 가는 도중에 용문사에 들렀다. 요즈음은 전철(중앙선)이 용문까지 와서 많은 사람이 자주 찾는 곳이라 한다. 지금은 설악산 단풍도 오대산 단풍도 절정기가 지났다고 하여 걱정하였는데 용문사 단풍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높은 1,100여 년 된 은행나무(높이 42m, 밑동 둘레 15.2m)도 노랗게 물들어 있고 아직 용문사 단풍은 볼만하였다. 다음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용문사 문화재 구역 입장료
구 분 |
어 른 |
청소년/군경 |
어린이 |
비 고 |
개 인 |
2,000원 |
1,400원 |
1,000원 |
|
단 체 |
1,800원 |
1,200원 |
800원 |
30명 이상 |
무 료 |
7세 미만 어린이, 65세 이상 어른, 장애인, 국가 유공자 |










법구경
이 몸이 영원할 줄 어이해 믿었던고 수행을 멀리하고 낭비를 일삼으며 익혀온 악업. 습기 즐기기 다 했더니 노병에 짝 잃으니 후회해 무엇하리
용문사 오르는 길가에는 이렇게 좋은 글도 있어서 사색하며 가을 단풍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사진상 글이 흐려 옮겼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천연기념물 제30호
동양 최대의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 재위)의 세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이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했으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중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자료: 용문사)

용문사(龍門寺)
소재지: 경기도 양평균 용문면 신점리 625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 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 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걸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 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자료: 용문사)






용문사의 가을
용문사는 바람에 들리는 풍경소리와 함께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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