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는 명백한 한국 땅
2012.8.17.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10일)과 일왕 방문 시 선 사과 요구(14일), 8·15 광복절 축사에서 위안부 과거사 문제 제기(15일) 등 연일 강공으로 한·일 외교 갈등이 심화하고 그 파장이 전방위로 확산하여 가고 있다. 일본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며 연일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15일 일본 현직 각료 두 명을 포함한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한일 간 조용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에서 갑자기 강경하게 전환하는 데는 작년 말 이명박 정부가 노다 요시히코 일본 내각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였고 또 그간 역사 왜곡 등 과거사 문제에 인내하며 미래지향적 태도를 요구하였으나 오히려 기대에 역행하며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자 크게 실망하고 노다 내각에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보고 강공 모드로 돌아섰다고 한다.
일본은 더 나아가서 17일 오전 우리 정부에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제안해왔다고 한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응하지 않을 방침이지만 여기서 왜 일본은 한국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왜 저렇게 자기네 땅이라고 계속 우기고 있는가 알아보자. 그것은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이 포기해야 할 한국 영토로 명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우긴다고 한다.
일본은 러·일 전쟁 막바지인 1905년 2월 동해에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독도를 강제 편입했고 그 해 5월 전쟁에서 이기자 곧바로 한국 병합에 들어갔다. 일본이 독일처럼 양식 있는 국가이고 한국 침략을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침략의 대표적 상징인 독도에 대한 억지 영유권 주장을 후안무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래 제시하는 두 건의 자료만 보아도 독도는 평화적으로 조선의 영토였는데 일본이 강한 군사력으로 위협하여 일방적으로 빼앗아 갔음이 분명하게 입증된다.
일본은 주인 없는 섬 먼저 점유한 것처럼 호도하지 말 것이며 전후 한국 영토 당연히 한국에 모두 이양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전쟁직후 수많은 섬을 다 일일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고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이 아직도 전쟁을 일으켜 인류역사상 많은 인명 피해를 일으킨 전쟁범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지금처럼 독도를 계속 빼앗으려 하는 한 한국에는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일본이 영토 야욕을 버리고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에 큰 피해를 입힌 이웃나라에 먼저 엎드려 사죄하기를 바란다.
* 독도가 조선(대한제국)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자료 ----------------
○ "독도는 우리땅" 日도 인정한 강력 증거 공개됐다 한국경제 2012년 8월 15일


日 고지도 "독도는 조선땅"1785년 일본 에도시대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제작한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 필사본에는 '죽도(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가 조선의 것(朝鮮 持)'이라고 표시돼 있다.
하야시는 독도를 일본식 표기인 ‘죽도(竹島)로 명시하고 옆에 ‘조선의 것(朝鮮 持)’이라고 명기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또 국가의 영토를 색깔로 표현, 일본의 영토는 녹색으로 색칠하고 울릉도와 독도는 당시 조선을 나타내는 노랑색으로 표시해 독도가 당시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독도는 조선 땅"이라고 표기한 18세기 일본 실학자의 지도가 공개됐다.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간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예미한 기류가 다시 형성돼 지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경기도 수원박물관이 개최한 특별기획전 '사운 이종학,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에 전시된 일본 에도 시대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 필사본에는 '죽도'(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가 조선의 것(朝鮮ノ 持ニ)이라고 명기돼 있다.
하야시는 조선 후기 지도의 대가 김정호와 비견되는 일본 지리학자다. 1785년 펴낸 '삼국통람도설'의 부속지도로 한중일 국경을 그린 삼국접양지도를 제작했다. 그는 지도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또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해 일본은 녹색으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을 나타내는 황색으로 표시,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수원박물관은 오는 10월 14일까지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특별전은 1부 '역사의 김매기를 시작하다', 2부 '충무공 이순신과의 만남', 3부 '한 줌 재 되어도 우리 땅 독도 지킬 터', 4부 '우리 강역 지키기', 5부 '내 고장 수원' 등 총 5부로 구성됐다.
수원박물관 관계자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 끊나지 않은 역사전쟁의 현실 속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알려온 사운 이종학을 기억하기 위해 전시회를 마련했다"며 "그가 평생동안 열정을 쏟아 수집했던 독도와 조선해 관련 자료, 잃어버린 땅 간도와 일제 침략 자료 등을 통해 역사의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운 이종학은 1927년 수원군 주곡리 출신의 재야 서지학자로 우리 역사자료 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1997년 일제에 의해 왜곡된 '수원성'을 본래의 명칭인 '화성'으로 바로잡았다. 그해 8월에는 독도박물관을 개관하고 초대 박물관장에 취임했다. 2004년 2만여 점의 유물과 자료를 수원시에 기증했다.
○ 대한제국, 독도서 고기 잡은 日 어부에 세금 받았다 조선일보 2012년 8월 17일

1902년 울도군 행정규칙 공개… 을사늑약 前 독도 실효지배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료
1902년 당시 대한제국이 독도에서 일본인 어부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이도록 한 행정 규칙 자료가 16일 공개됐다. 이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전의 것으로서, 우리가 독도를 과거부터 실효적으로 지배한 점을 입증할 또 하나의 사료(史料)로 평가된다.
경북 울릉군은 1902년 대한제국 내부(內府·현 행정안전부)가 작성한 울도군(鬱島郡·현재의 울릉군으로 독도를 관할)의 절목(節目·행정 세부규칙·사진)을 한아문화연구소(소장 유미림)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했다. 모두 10쪽으로 돼 있는 이 절목엔 내각 총리대신 윤용선의 결재 인장이 찍혀 있다.
이 절목에는 울릉도와 독도에서 경제활동을 한 일본인에 세금을 부과한 규정이 담겨 있다. 특히 '울릉도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독도에서 잡은 강치(바다사자의 일종으로 현재 멸종된 것으로 알려짐)를 수출하려면 절목의 규정에 따라 수출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를 공개한 유미림 소장은 "일본인이 독도 어로에 대한 세금을 울도군에 납부했다면, 이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울도군 절목은 초대 군수인 배계주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울릉군 문화관광과에서 발굴한 것이다. 유 소장은 "1904년과 1905년 울릉도에 사는 일본인들이 강치를 일본으로 수출한 사실이 일본 외무성 기록에도 남아 있다"며 "이는 일본인들이 울도군에 세금을 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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