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문학/수필

쑥 캐는 남자

정의&자유 2010. 4. 25. 00:09


 
쑥 캐는 남자

2010년 4월 25일 

 

  어제 23일(금요일) 토요일 오전에 아내가 쑥 캐러 가자고 한다. 봄은 연한 쑥이 자라는 계절이다. 올해 몇 번은 인근의 산으로 쑥 캐러 가야 할 것 같다. 뭐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채비를 하고 선뜻 쑥 캐러 나섰다. 아내는 함께 갈 동네 아줌마가 없으면 간혹 필자와 가곤 하였다.

아무래도 한적한 산 쪽으로 가야 하니 보호도 되고 심심함도 덜고 일손도 보태니 일거삼득이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이런 날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군말 없이 따라간다. 오늘은 아침 산 운동 대신에 쑥이나 캐야 할 모양이다. 컴퓨터와 뉴스를 몇 시간 못 본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잦은 비로 일조량이 적어 농산물 값이 금값이라 한다. 그래서 아내는 아파트 뒷산으로 냉이, 돌미나리 등 산나물을 캐서 다듬어 하루 이틀분의 반찬을 만든다. 따온 산나물을 오래 다듬으며 '아이고 허리야!'라고 하는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백수 처지에 뭐라 말할 수도 없다.

쑥은 주성분이 칼슘, 섬유, 비타민 A, B, C가 들어 있으며 한약재료도 많이 쓰인다. 효능은 경락이 따뜻해지고 피를 맑게 하며 여성의 몸이 차고 생리가 불순할 때, 설사와 하혈, 만성간염이나 기관지염 등에 좋다고 한다. 아내는 캐온 쑥으로 쑥 수제비, 쑥 칼국수, 쑥 만두, 쑥떡을 해서 먹는다.

그러나 쑥이 좋다고 해도 필자 스스로는 해먹기 위해서 쑥을 캐러 다니지는 않는다. 오늘 이렇게 따라나서는 것은 쑥을 좋아하는 아내를 돕기 위함일 뿐이다. 사람은 먹어야 살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먹을거리로 꼭 쑥이 아니어도 아무 상관없다. 그러나 아내를 돕는 일은 현재 필자에게 아주 가치 있는 일이다.

산으로 가는데 최근에 산 주위로 자전거 도로를 새로 낸 길로 데리고 간다. 필자는 처음 가는 길이다. 작년에는 산을 넘어 산 뒤쪽으로 갔었는데 자전거 도로가 새로 생기고 나서 산 뒤로 가니 무척 편해지고 빨라졌다. 편해지기는 하였어도 필자는 안타깝다. 자연이 그만큼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뭐 한두 사람이라도 타는 사람이 있다면 에너지 절약을 위해 좋은 일일 것이다.

산 뒤로 나와서도 한참을 간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니 쑥 많이 자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자전거 도로와 산으로 난 작은 시멘트 길 주변으로 비닐하우스와 밭이 많이 새로 생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쑥을 캐었는데 이젠 접근할 수도 없고 그 주변에서 쑥을 캐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참! 그렇게 우리는 공동의 것을 빼앗기고 있다. 아내에게 농담으로 '우리도 주변을 개간하여 우리 땅을 만들까?'라고 하자 돌아오는 답변이 '당신이 매일 농사지을 수 있어요?'라는 핀잔이다. 하긴 우리 같은 사람마저 자연을 파헤치면 정말 엉망이 될 것이다. 그래도 괜히 빼앗긴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드디어 아내가 쑥이 많다고 하는 곳에 도착했다. 쑥에는 아침 이슬이 가득 맺혀 있어 햇볕에 반짝반짝 영롱하다. 이슬이 맺혀 있으니 쑥 캐기는 오히려 불편하다. 산나물을 오래 다듬으면서 허리가 아프다는 아내를 생각해서 가능한 뒷손질을 줄이려고 나름 다듬으면서 깨끗하게 땄다. 그래도 나중에 보니 역시 필자가 딴 것은 아내가 딴 것보다 손질을 더 하는 것 같다.

오전에 3시간 정도 잠깐 캐기로 했는데 시간이 되어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아 그만 가자고 필자가 재촉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땄더니 허리도 아프고 곧 뉴스 볼 시간이다. 아내가 시간을 물어보더니 가자고 한다. 다른 곳에 우리처럼 쑥을 캐는 부부가 보인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남자분은 비닐봉지를 들고 그냥 서 계신다. 돌아가는 길 산의 공기는 좋고 여러 가지 봄꽃도 아름답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쑥 캐기 방어전을 치렀다. 앞으로 몇 번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쑥 캐는 일은 집 근처에서 우리 부부가 함께 오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함께 가는 것을 고마워하는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필자가 아내를 도와주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아내가 쑥을 좋아하는 한 함께 다닐 아줌마가 없을 때 간혹 쑥을 캐러 가게 될 것 같다. 봄은 필자를 쑥 캐는 남자로 만든다.
 

 


배수로의 꽃잎

배수로에 떨어진 꽃잎이 필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한때는 잘 나가는 아름다운 꽃이었는데, 백제 삼천 궁녀가 떨어질 때도
저렇게 찬란한 아픔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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