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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연가 현지탐사 - 도산서원

정의&자유 2008. 4. 21. 10:32

 


수석연가 현지탐사 - 도산서원

2008년 4월 21일

 

 

하회마을, 도산서원, 이육사 문학관이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퇴계학술원 회원이신 시인 청완 김석님과는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안동에 내려오시면서 청완님께서는 도산 서원의 매화가 아름답게 피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안동의 전통문화콘텐츠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안동 수석인 일심 임재하님의 차로 도산서원에 들르기로 하였다.

도산서원 입구에서 차를 주차하고 일행은 도산서원으로 향하였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높은 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단 한번의 방문으로 퇴계의 깊은 학문의 세계를 알 수는 없겠지만 선생의 학문과 후세 양성을 위한 열정 등 업적의 일부분이라도 접할 수 있는 행운을 갖을 수 있었다.




산서원 진입로

주차장에서 매표소를 거쳐 일행들이 도산서원으로 향하였다.




시사단(지방 유형문화재 33호)

 

강 건너편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 16년(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채제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 도산서원

 

도산서원을 향하여 가는데 강 가운데 누각이 보여 특이한 경관이라 촬영을 하였다.
도산서원의 안내문을 보니 과거를 보던 시사단이었다.




기념사진

안동시에서 도산서원에 파견나오신 이길원님을 만나 기념촬영,
좌측부터 일심 임재하님, 청완 김석님, 퇴계후손 이길원님, 청완님 사모님, 필자 아내






도산서원(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사적 제170호)

 

해동주자라 일컬어지는 한국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李滉)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선생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선생의 높은 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선조 8년(1575)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한석봉의 친필로 된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광명실, 전교당, 상덕사, 장판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에는 안동호가, 뒤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에워싸고 있어 멋과 서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 안동시 홍보 책자




기념사진

도산서원 앞에 매화 한 그루가 멋지게 자라 꽃을 피웠다.
사모님과 필자 아내가 함께 기념촬영




도산서원 내부

매화 꽃등 봄 꽃이 한창이다.





기념사진

청완님 내외분 기념촬영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식수 황금소나무

 

이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아끼시던 금송(錦松)으로서 도산서원의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해 1970년 12월 8일 손수 옮겨 심으신 것입니다. - 도산서원

일심님께서 황금소나무라고 알려주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다지 황금색이지는 않았다.
박 정권 때에 과거 학문의 전당이었던 문화재를 귀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몽천

 

산골에서 솟아나는 바가지 샘을 [역경] 몽괘(몽卦)의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하고, 몽매한 제자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는 스승의 도리와, 한 방울 샘물이 솟아나와 수많은 어려움을 거쳐 바다에 이르듯이 제자들은 어리석고 몽매한 심성을 맑게 깨우쳐서 한 방울의 샘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뜻을 이룩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안동라이온스 클럽 문화유적안내

 




정우당(淨友塘)

 

국화는 꽃 중의 은자(隱者)라 하였고, 모란은 부귀의 꽃이라 하였는데, 주렴계는 연꽃이 진흙탕에서 살면서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맑고 바라 볼 수는 있지만 가지고 놀 수 없어 꽃 중의 군자라 하여 퇴계는 군자를 벗으로 삼아 연못에 연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 안동라이온스 클럽 문화유적 안내

 




도산서당

 

퇴계 이황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데 재력이 부족했던 선생은 건물을 완공하는데 자그마치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건물의 오른쪽에서 부터 마루, 방, 부엌, 3칸으로 되어 있다. 방안 왼쪽의 좁은 공간은 선생의 옷과 침구류를 보관하는 곳이며, 정면의 20cm 정도의 턱은 퇴계 선생이 평상시에 읽으시던 책을 보관하는 곳인데, 선생은 배움을 얻는 책을 어찌 사람과 같이 바닥에 놓은 수 있겠냐 하여 사람이 생활하는 바닥보다 높은 곳에 보관하였다.

서당 앞 연못에는 정우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꽃을 키웠으며, 서당 밖 화단에는 정우사 라는 이름을 붙여 매화, 대나무, 국화, 소나무를 심어 사계절을 달리하는 나의 벗이라 하였다.
- 안동시 홍보 책자

 




광명실(光明室)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데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 식으로 지었다. '광명(光明)'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준다"는 뜻이다.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전국 서원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약 5000여권의 책이 보관되어 있다. 오른쪽의 건물을 동광명실이라 하고, 왼쪽의 건물을 서광명실이라 한다. 동광명실에는 역대왕의 내사서적과 퇴계 선생이 자주 보시던 책이 있고 서광명실에는 퇴계선생이 돌아가신 뒤 근대까지 발간된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현재 광명실의 책은 국학진흥원으로 옮겨 연구.보존되고 있다. -안동시 홍보 책자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 보물 제210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대청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나 측면과 배면에는 각 칸마다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한다. 전면 좌우에는 부속건물로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있다. - 도산서원

 




기념사진

도산서원 전교당 앞에서 기념촬영




오죽

도산 서원 한쪽에는 오죽이 자라고 있었다. 대나무의 대가 검은 것이 특이하다.




목련

옥진각으로 가는 길목에 목련이 멋지게 피었다.




옥진각 (위, 옥진각 내에 붙어 있는 도산서원 항공사진)

 

1970년에 건립한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외부는 한식, 내부는 현대식으로 지었으며 '금성옥진'의 줄임 말로 '글을 읽는 소리는 금소리와 같고 글을 떨치는 것은 구슬과 같다'는 뜻이다. 이곳에 진열된 유품은 모두 선생이 사용하시던 일용품인 문방구와 실내 비품으로 하나같이 소박하고 검소하며 외면적인 꾸밈괴 사치를 떠나 오직 청빈에 만족하신 도학자다운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안동시 홍보 책자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촬영 금지 구역이었다. 촬영한 것 중 일부만 소개합니다.




성학십도

 

유교철학의 주요체계 10가지를 도식으로 나타낸 것으로 선생 68세(1568년) 때에 작성하여 선조대왕께 올렸다. 선조께서는 성학십도를 병풍으로 만들어 좌우에 두고 보셨다. - 도산서원

 




퇴계 선생과 율곡 선생과의 관계

우리나라 성리학자를 대표하는 퇴계 선생과 율곡 선생과의 선후배, 또는
사제지간과 다름없는 존중과 애정의 정을 나눈 돈독한 관계라고 함.







수신십훈






퇴계선생의 문필 중 도산십이곡




도산서원 앞의 아름다운 풍경






도산서원 앞의 매화나무

산서원 앞의 매화나무는 꽃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한창인 시절은
지난 듯 하다. 도산서원에는 벚꽃은 없다 한다. 매화 향만 가득하였다.





수석인의 샘터 참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