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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연가 현지탐사 - 퇴계종택, 성현의 예던길

정의&자유 2008. 4. 22. 09:24

 


수석연가 현지탐사 - 퇴계종택, 성현의 예던길

2008년 4월 22일

 

도산서원에서 나와 우리 일행은 도산서원 부근에 있는 퇴계종택으로 향하였다. 퇴계탄신 500주년 기념행사 때에 도산서원에서 바로 퇴계종택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도산사원에서 10분만 이동하면 퇴계선생의 후손을 만날 수 있다.

일심님 말씀에 현재 3대가 살고 계시는데 三婦가 계시지않는다고 한다. 종가의 어려움을 미뤄 짐작케 한다. 청완 김석님께서는 500주년 때에 안동에서 퇴계관련 방송에 출연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퇴계후손 이길원님과 함께 퇴계종택과 퇴계공원에 들렀다.



퇴계종택(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기념물 제42호)

 

대학자인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이다. 정문에 '退溪先生舊宅(퇴계선생구택)'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선생의 13대손 하정공이 옛 종택의 규모를 다라 신축하였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자 형태인데 총 34칸으로 이루어졌다. 우측에 있는 '추월한수정(秋月漢水亭)' 마루에는 '도한연원방(道學淵源坊)'이란 편판 등이 게판되어 있다.
- 안동시 홍보 책자

 




퇴계기념공원

 

퇴계종택 옆에는 '퇴계기념공원'이 조성되어 빗돌에 새겨진 퇴계 선생의 한시를 감상하고 산책도 즐길 수 있다. 퇴계선생의 학문과 삶의 재조명을 통해 퇴계 선생의 정신과 삶의 소박함을 연출한 편안하고 정다운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 안동시 홍보 책자

 

일심님 말씀에 의하면 1999년 3월 19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에 방문한 이후
예산지원이 되어 최근 7년 전부터 이곳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퇴계종택

퇴계공원에서 촬영한 퇴계종택 측면 전경








퇴계공원

퇴계 선생의 시비, 원두막에 큰 정원석 등을 볼 수 있다.


 

투호놀이

공원 안에 투호가 있어 일행들이 잠시 투호놀이를 하고 있다.
필자도 처음 해 보았는데 의외로 집어 넣기가 어려웠다.




예던길(안동 체험관광 코스 중에서 인용)

 

퇴계 이황 선생이 학문 수양을 위하여 종택.도산서원에서 청량산을 오가던 예던길을 걸으며 퇴계사상과 퇴계시가 형성된 수려한 자연경관과 선생의 삶과 학문을 느껴볼 수 있다.
- 안동시 홍보 책자

 

다음으로 일행은 퇴계 선생이 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산책을 하였던 예던길로
향하였다. 예던길이 최근 복원되어 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예던길은
퇴계 선생의 산책로이나 앞서간 성현의 뒤를 따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청완 김석님께서 설명해주셨다.





미천장담(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차를 타고 미천장담에 올라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 낙동강 줄기가 보이고 그 옆에
예던길 일부가 보인다. 저 멀리 청량산도 보인다. 작년 아내와 청량산까지
여행 온 기억이 난다. 이곳에는 큰 빗돌이 3개 있었다.




시심의 길

 

이 길은 단천교에서 고산정까지 이어지는 시심의 길로 백운동, 미천장담, 경암, 한속담, 월명담, 일동, 고산정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퇴계선생의 한시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 빗돌


彌川長潭(미천장담)

 

한참 동안 기억하여 보네, 어릴 때에 여기서 낚시 하던 일을,
삼십 년 긴 세월 동안에 속세에서 자연을 등지고 살았네,
내 돌아와 보니 알아 볼 수 있네, 옛 시내와 산 모습을
시내와 산은 반드시 그렇지는 못하리라, 나의 늙은 얼굴을 알아보지는. - 빗돌

 




景巖(경암)

 

천년을 두고 물살을 받으나 어찌 삭아 없어짐이 있겠는가?
물결 가운데 우뚝 우뚝이 서 있으니 그 기세 씩씩함을 다투는 듯.
사람들의 발자취란 꼭 물에 뜬 부평초 줄기 같으니,
다리를 굳게 세움 누가 능히 이 가운데 있음만 하리오? - 빗돌

 


2.백운동 3.마천장담 4.경암 5.한속담
6.월명담 7.고산 8.희소대 9.벽력암

 

성현의 예던길 약도(안동시 홍보 책자에서 인용)

 

예던길을 퇴계 선생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걷고 싶었지만 안동 하루 일정으로
여행 온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안동에서의
문화 관광을 이것으로 모두 마쳤다.





수석인의 샘터 참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