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석은 버리는 것부터 배워야
수석을 처음 배울 때 선배로부터 '수석은 버리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라는 말을 듣는다. 수석 사부가 있어 탐석을 함께 다니며 배우면 빨리 터득하겠지만 나홀로 탐석을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그 의미를 알기에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초보 때에는 나름대로 좋다고 선택하여 탐석한 것을 선배에게 보여 드리면 쓱 살펴보고서는 제대로 설명도 없이 모두 버리라고 하면 겉으로는 무척 당황하고 속으로는 내심 기분이 나쁘다.
어떤 때에는 모두 버리라고 하고서 괜찮은 것을 선배가 몰래 챙겨가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하게 된다. 그러나 집안에 돌이 자꾸 쌓이고 돌보는 안목이 차츰 생기면서 그냥 돌멩이를 가져다 놓았다는 한심한 생각에 한 번은 왕창 갖다 버리게 된다.
그래도 다양한 산지의 수석을 보는 안목이 일시에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서 계속 고민석을 만들고 쌓이게 되면 산지에 되돌리기 운동도 실천하며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워가게 된다. 그래도 고민석은 자꾸 생기고 수석 경력이 오래되면 집안 구석구석 쌓일 만큼 쌓여서 자꾸 가져오는 것도 부담되고 부인의 견제도 점점 심해진다.
그래도 평소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무소유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한 인간으로서는 그놈의 욕심 때문에 산지가 곧 수몰되니까, 처음 간 산지라 구색을 갖추기 위해, 워낙 먼 산지라 자주 오지 못하니까, 함께 오지 못한 석우의 선물석으로, 맨손으로 가기 서운하니 기념석으로, 필자는 탐석기를 쓰기 위해 등등 여러 이유로 부족해도 챙겨오게 된다.
탐석한 수석을 석우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을 때 야! 명석이네. 어! 한 점 했네, 좋은데! 이 정도의 긍정적 반응은 아니어도 최소 묵시적 공감이 있어야 한다. 고개를 흔들거나 별로인데, 글쎄. 에서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친한 사이에는 버려! 라는 부정적 반응이 나오고 더구나 부정적 반응이 두 사람 이상이면 가져가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주초 선배님과 목계로 탐석 가서는 옥석 입석 큰 돌을 탐석하였다. 강돌 옥석에서 좋은 문양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또 기왕이면 강돌이라 해석보다는 큰 것이 좋다. 30cm 정도의 커다란 입석에 자세히 보니 양각으로 면벽 수양하는 그림이 있다. 가운데 한 줄로 녹슬어 있고 끝 부분이 깨진 것처럼 들어가 있는 단점이 보여도 기상이 좋고 그림도 있는데다 돌갗에 흙이 묻은 열악한 탐석 환경도 영향을 받아 여기서 이 정도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석명: 쌍봉산, 크기: 16x12x6, 산지: 조정지 댐 돌밭
그런데 두 분께 여쭈어 보니 반응이 별로시다. 그래도 나름 양각 문양석으로 의미가 있다고 고집을 부려 가져왔으나 깨끗이 씻고 연출해서 사진 촬영을 해보아도 좋다는 느낌보다 좀 커서 부담이 되고 볼수록 버려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자꾸 기울어진다.
마침 해당 주말 토요일에 또 탐석 계획이 있어 당장 차에 싣고 가서 다른 석우에게 물어보니 역시 반응이 좋지 않아 결국 버리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나? 한 가지만(양각 문양) 보고 결점이 있는 돌을 택한 것은 아니었나? 돌이켜 생각해 보고 스스로 크게 반성한다.
우리 석인들이 탐석하는 것을 어떤 분은 석연을 맺는다거나 석무를 춘다고도 하고 또는 작품 활동을 한다고도 한다. 물론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할 때 수석은 자연이 빚은 신비로운 작품으로 경외하는 마음에서 선택하여 소중하게 모셔와야 하는 것을 그림이나 조각 만들 듯 작품 활동한다고 하면 되느냐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수석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탐석이 돌을 줍는 단순 노동이 아닌 예술 활동을 하는 것으로 한 차원 높은 의미라고 말한다.
수석은 모두 돌이다. 그러나 돌은 모두 수석이 아니다. 수많은 모래를 걸러내고 모래에서 사금을 채취하듯 수많은 돌 속에서 수석을 발굴해야 한다. 소장석에서 수석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돌멩이를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예술 활동하는 의미로 본다면 수석으로 선택할 때 좀 더 엄격하게 봐야 할 것이다.
도공이 잘못 빚은 도자기를 깨어 부수거나 화가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듯이 깨졌거나 석질이 떨어지거나 수마가 덜 되었거나 등등 수석이 되기 위해 결점이 없는가? 유심히 살펴보고 선택해야 한다. 특히 형과 내용이 부족할 때 석질이 좋은 것은 그래도 조금 오래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석질이 나쁘면 금방 싫증이 나서 거의 버릴 확률이 높다.
그러나 산지가 고갈되었다거나 해당 산지는 처음이라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한두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선택해 취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수석감이 눈에 띄었을 때 한두 가지라도 결점이 보이면 장인정신으로 버려야 하는 데 반대로 한두 가지 볼만한 것이 있다고 눈에 띄는 결점을 애써 외면하고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즉 잘 버려야 하는데 잘 주운 것은 아닐는지. 어떤 석우 분은 자신은 탐석할 때 전시회 출품 수준으로 선택한다고 하는 말을 들은 바가 있다. 우리네 수양이 덜 되고 욕심이 많아서인지 그런 것이 잘 안 된다. 옛말이 틀린 말이 없다 하였다. 수석 선배들의 '수석은 버리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라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다.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더 잘 버릴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석명: 면벽 수양, 크기: 13x29x7, 산지: 목계 작업장
하단 우측에 면벽 수양하는 스님의 모습이 양각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가운데 길게 녹슨 부분과 위 깨진 것처럼 보이는 들어간 면이 있다. 가운데 녹슨 부분을 양석해서 가능한 깨끗이 한다고 하면 양각된 부분의 외곽선도 흐려질 수 있다.
*월간 수석의미 2010년 5월호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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