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해외 여행

러시아 5박 6일 여행 2일차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정의&자유 2018. 8. 29. 20:26

♣ 러시아 5박 6일 여행 2일차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2018.08.29.


        여행 2일차는 호텔을 옮기지 않아서 여유 있게 출발할 수 있었다. 어제 2일차 여행지를 먼저 가서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인지 오전 첫 일정으로 이제는 개방한 러시아군 시설을 관광하였다. 물론 시간이 남아서겠지만 여행 와서 외국에 군 시설을 그것도 과거 적이었던 러시아군 시설을 감상하는 것은 정말 별로다. 그다음으로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을 관광하였다. 기념탑은 한민족 상징 기념비로 3개가 세워져 있는데 왼쪽은 북한, 가운데 한국, 오른쪽은 재외 교포를 상징한다. 세계 속에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으려면 1억 명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은 2천만, 한국 5천만, 재외 교포 총 1천만 하여 모두 합하면 8천만으로 1억이 안 된다. 우리 모두 인구수를 더 늘려야 하는 민족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곳에 들른 기념으로 김석님께서 대표로 방명록에 사인하셨다. 누군가 여기서 선구자를 불러야 한다고 권했다. 여성 분 중 교회는 달라도 성가대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두 분이다. 선구자는 못 부르고 큰 사모님이 지휘하여 아리랑을 불렀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나라를 빼앗겨 한을 새기며 불렀을 한 깊은 노래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것으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신라 음식점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했다. 블로그 올리는 순서는 한민족 상징 기념비 관광부터 올린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187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진, 개척리. 한인들은 꿈과 희망을 모아 이곳을 일궜다. 그러나 콜레라가 창궐하자 러시아 정부는 시 외곽으로 이들을 강제 이주시킨다. 새로 만들어진 마을을 신개척리라고 불렀는데 한인들은 '신한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새로운 한인촌'이라는 뜻의 신한촌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존재하면서 해외 독립 운동가들의 주요 활동 근거지가 되었다.
(출처: 고려인 문화 센터 인쇄물에서)

 


러시아에서 태극기를 보니 반갑다.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문, 글이 잘 안보여 아래 옮깁니다.


◎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 문


      민족의 최고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외 기사들은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 회복을 위해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성명회와 권업회 결성, 한민학교 설립, 신문발간, 13도의 군 창설 등으로 민족역량을 배양하고 1919년에는 망명정부 (대한국민의회)를 수립하여 대일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민족은 1937년 불행하게도 중앙아시아에 흩어지게 되고 신한촌은 폐허가 되었다. 이에 해외 한민족연구소는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들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 인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이 기념탑을 세운다. 


1999년 8월 15일
한국 사단법인 해외 한민족연구소

 

 

신한촌 기념탑 관리 사무소 안의 전시물




연해주 평화 정책 자문위원회 위원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방문한 기념 사진 아래 많은 명함들이 놓여 있다.




방명록 기록




아리랑을 합창하는 일행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을 위해 안내판을 올린다. 루스키섬 '무기 박물관'이라 한다.




포신 길이가 엄청나게 크다.




이렇게 큰 포로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함을 상대로 쐈을 것이다.




포 위에 있는 기관총의 총구를 보았다. M1과 칼빈 총구만 보았는데 기관총 총구는 처음 본다.






한국식 신라 식당




음식 사진 잘 안 찍는데 음식이 깔끔하게 나와서 촬영. 갈비탕을 시켰는데 일본인도 식사를 해보고 한국에서
먹어본 것 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는데 정말 한국 음식보다 더 한국적이었다. 굉장히 신경을 써서 만든 음식이다.

이곳은 단체 손님을 받지 않고 소문으로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한다.




옛날 궁중 옷이 걸려있어 사진에 담아 보았다.